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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
 
작성일 : 13-09-25 16:02
내가 믿는 하나님은
   본문성경구절 : (롬15:13)
Date : 2013-09-25 16:02:49  
내가 믿는 하나님은(롬15:13)  ♬32, 488,95. 초원 031-381-6656
요즈음은 편지를 많이 쓰지 않지만 제가 학창시절에는 성탄카드며 연하장 등을 비롯하여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쓸 때는 서언도 중요하지만 맺는말은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편지 내용 숙지와 향후 관계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맺는말로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축복했습니다.
바울의 이 축복은 실생활에 관한 마지막 교훈이기도 합니다(14:1-15:13). 따라서 간단한 말씀이지만 매우 깊이가 있고 비중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축복(=교훈)을 통하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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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교직에 있을 때만해도 매년 5월 15일은 학교 운동장에서 스승의 날 기념식을 했습니다. 식순에는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 드리고 정중하게 인사드리는 순서가 있습니다. 가슴에 꽃을 달아주기 위해서는 서로 마주 서야합니다. 가장 친밀한 거리에서 서로의 눈길을 보내고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바라보며 사랑의 교분을 나누게 됩니다. 그건 첫 포옹만큼이나 설레고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등을 돌리면 상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등을 돌린다는 것은 몸만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마주 서야 상대가 보입니다. 서로 마주서야 따뜻한 눈길도, 떨리는 입술도 보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마주서야 사랑의 꽃을 함께 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미풍양속을「촌지 추방」이란 알량한 명분으로 산산 조각내더니 지금의 학교 교육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승의 날 선물을 뇌물로 몰아붙이더니 스승의 권위는 어떻게 되었나요? 모두가 벌떼처럼 일어나 스승의 권위를 무너뜨리더니 학교 교육이 어떻게 되었느냔 말입니다. 학교 교육이 무너진 우리사회는 어떻게 되었나요?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던 미국사회는 히피족이 등장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권위를 무너뜨린 우리나라는 학생이 스승의 뺨을 치고 머리끄덩이를 낚꿔채고 선생님께 욕설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버스에서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옛말이 되었고 바지를 입었는지 팬티를 입었는지 구별이 어려운 옷차림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성폭행하고 사기 치며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일을 감행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든 게 교육을 무너뜨린 대가를 호되게 치르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교직에 27년을 종사했습니다. 저에게 촌지를 건넨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설령 촌지가 있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촌지를 주고받던 그 때의 학교교육은 촌지가 없어진 지금의 학교육보다 형편없이 저질이었던가요? 촌지를 주며 스승의 권위를 높이던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지금의 청소년보다 더 악랄했던가요?
우리말에‘빈대 잡기 위하여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부 일탈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모든 선생님들을 촌지교사로 몰아가더니 촌지 없는 학교로써 교육이 정상화 되었는지요? 촌지 없는 학교, 체벌 없는 학교가 지금은 파라다이스인지요? 교권을 무시하고 학생인권을 운운하더니 학교는 어떻게 됐는지요?
초등학생이 학교 가기 싫다고 교실에 불 지르고, 여중생이 담임선생님 머리끄덩이 잡고, 고등학생이 교장선생님을 폭행하고, 학생들끼리 왕따시키고, 흡연 음주는 단속대상에서 제외될 형편이고, 학원에서 수업하고 학교 와서 잠자고, 여고생이 화장실에서 애기 낳는 등 교권을 추락시켜 얻은 게 그거란 말인가요?
이 땅에 소망이 적어 보입니다. 학교에 소망이 적어 보입니다. 어디 학교뿐이겠습니까? 정치는 어떻고요. 간첩이 국회의원이 되고, 종북 세력이 판을 치고, 자리싸움과 밥그릇 싸움은 쉬지 않고, 사회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 공금 몇 십 만원 횡령한 말단직원은 처벌받고 수천억씩 집어 삼키면 손 안대는 사회입니다. 이리 봐도 소망이 적고 저리 봐도 소망이 적어 보입니다. 소망 없는 사회, 어떻게 할까요? 다음 말씀을 보십시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씀대로 소망의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셔야 합니다. 빛을 주시고, 등대를 주시고, 진리를 주셔야 합니다. 정답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이십니다.
 
2. 기쁨과 평강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르신 얼굴이 참 좋아 보이세요!"라는 인사는 노인에게 가장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제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활기차게 노년의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젊은이들보다 더 활력이 넘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이가 들수록 젊을 때는 몰랐던 소중한 것들이 자꾸만 생겨납니다. 가족이 소중해지며 젊을 적 가졌던 온갖 두려움이 사라집니다(루이스 월퍼트의 당신 참 좋아 보이네요!)
저도 "참 좋아 보이시네요!"라는 인사를 많이 받습니다. 고맙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은 안 그래요. 지금 가슴도 아프고 뼛속 통증도 있어요"라고 혼잣말을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좋아 보인다"는 그 말에 뼛속 통증이 금세 사라지고 얼굴도 다시 활짝 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요즘 여러분에게 모자라는 것, 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건강일 수도 있고, 금전일 수도 있고 수면 부족일 수도 있습니다. 대인관계이거나 문화생활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시간이 부족한 분도 계시겠죠. 저의 경우엔 매주 교회에서 사용하는 일상적인 설교 외에도 극동방송 특집 원고, 일반설교원고, CTS TV 특강 원고, 네팔 성토신학교 교재 등을 만들기에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진정한 기쁨과 평강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기쁨과 평강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확신을 갖지 못했던 제자들이 방에 모여 문을 잠그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 문이 잠긴 저들의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평강을 주셨습니다(요20:21).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기쁨과 평강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행복하시기 원합니다.
 
정치인과 거지의 8대 공통점을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입(말)으로 먹고 산다.
•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 정년퇴직이 없다.
•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
•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나타나는 습성이 있다.
• 내 구역 지역구 관리 하나는 똑 소리 나게 한다.
• 되기는 어렵지만 되고나면 쉽게 버리기 싫은 직업이다.
• 현행실정법으로 다스릴 재간이 없는 골치 아픈 쓰레기다
이들에게도 기쁨과 평강이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알려주고 믿게 권고해야 합니다.
 
3. 성령의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서기 156년경에 살았던 폴리갑은 화형당할 위기에서 로마의 시저를 신으로 인정하면 석방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주님은 80평생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데 지금 내가 더 살겠다고 주님을 배반할 수 있겠는가?”고 하며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86세의 노인네에게 어떤 힘이 있어서 그렇게도 당당했을까요?(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에 성령의 능력이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은 두부를 즐겨먹습니다. 그들은 12월 31일 밤 12시, 제야의 밤에 교토 아라시야마 산에서 눈을 맞으며 강변에 쌓인 흰 눈을 바라보고 뜨거운 탕 두부 먹는 것을 최고의 멋 중에 하나로 여깁니다.
바로 그러한 교토에 삼화두부라는 두부가게를 가업으로 물려받은 이토 신고(43)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1968년에 문을 열었으나 장사가 너무 안 돼 망하기 직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토에는 수천 명의 단골고객을 가진 수백 년 된 명소가 많았고, 두부가격은 한모에 100엔, 맛도 비슷비슷 하고, 네모난 모양도 똑 같았습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100엔짜리 팔아봐야 남는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바꿔야한다, 튀어야한다.」가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문제는‘어떻게 튀는 두부를 만들까’였습니다.
 
일본의 20-30대 남자를 가리켜 초식남(草食男)이라고 합니다. 풀만 먹고 사는 애들이란 뜻으로 용기도, 희망도, 박력도 없는 남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한 거죠. 여기서 그는 20대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부이름도 <남자다운 두부>로 짓고 가게 이름도 <남자다운 두부>로 바꾸었습니다. <남자다운 두부>라는 뜻의 <오도코마에 두부>는 두유의 농도를 좀 더 높여서 고소하게 하고, 남자다움을 강조해서 포장에는 <男>이라는 붓글씨를 큼지막하게 써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박력과 배짱, 용기, 의리 있는 두부라는 것을 강조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100엔짜리가 아닌 300엔짜리 두부를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2005년도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황당한 <남자다운 두부>가 일반두부보다 세배가 비싼데도 대 히트를 쳤습니다. 일본의 초식남들은 이 두부를 먹으면 왠지 남자가 될 것 같고, 왠지 용기와 박력이 생길 것 같은 기분에 사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두부 이름을 붙이다 보니까 매스컴에서 갑자기 취재를 와서 기사를 써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판매는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는 오도코마에 두부를 문화상품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오도코마에 노래<남자다운, 남자다운, 남자다운 두부...>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마치 유행가처럼 번져나갔습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입에 달고 다닙니다. 이어 T-셔츠에도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男>자라는 글씨를 넣어 800엔에 판매했고 컵, 키홀더, 운동모자, 손수건, 등산용 색 등도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무지하게 잘 팔렸습니다. 2010년 매출 60억엔(9백억원)돌파, 일본을 대표하는 두부가 됐습니다. 이 회사의 사훈은 <남자다운 두부는 당신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입니다. 이 두부의 인지도가 최고입니다.
 
이토 신고(43)씨가 남자다운 두부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장담합니다. 그런데 저는 단호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그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외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 기쁨과 평강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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